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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지 수메루의 다락방은 file [5] [레벨:95]이젠 2003-08-11 2585

65. 사월 그리고 오월 file [2]

그 노래를 있게 한 길옥윤선생과 패티김선생의 전해진 사연처럼 딱히 보내야 할 사람이나 떠나야 할 사람이 내게 있는 것도 아니고 더군다나 하필 사월에 정해진 이별 따위가 내게 있는 것도 아닌데 해마다 사월이면 굳이 찾아서라도 듣곤 하는 노래, '사월이 가면' 올해도 어김없이 사월의 끝자락에서 그 노래를 생각해 냈고 찾아 들으며 입 안에 놓고 따라 불러보다 씁쓸해졌다. '사월이 가면 떠나야 할 그 사람/ 오월이 오면 울어야 할 사람' 나는 늘 이 마지막 가사가 잘못 삼킨 생선 가시처럼 목에 걸린다. 떠나야 할 사람과 보내놓곤 울어야 할 사람이라니, ... 내 앞에 닥친 일 아니라 그저 막연한데도 그 부분에서 그만 울컥, 알 수 없는 무엇인가가 가슴 어디 한 쪽에 둔탁한 소리를 내게 한다. 아프게 사월을 보내놓고 ...

64. 이런 이야기- 부연 file [13]

나이가 중년으로 접어들면서 살아온 지난날을 돌아볼 때가 가끔 있고 나는 내 인생 10대 비운을 꼽아보았는데 그 열 가지 비운 중에는 ‘내가 원하지 않은 학교로의 진학’을 포함한다. 그 서글픈 중학교... 형편이 닿는 몇몇 친구들은 좀 더 나은 중학교 진학을 위해 초등학교 육학년 때 더러 타지로 전학을 나가기도 했지만 나머지 우리 모두는 선택의 여지도 없이 남학생은 남중으로, 여학생은 여중으로 일괄 배정되었으므로 나는 지역에 달랑 하나 있는 사립 여자중고등학교의 여중에 내 의사와 전혀 상관없이, 초등학교를 함께 졸업한 여학생 전원과 같이 입학했다. 내가 꾼 거대한 꿈이 펼쳐지기에 시골 여학교 울타리 안은 언제나 옹색하게만 보였는데 나는 나를 가르치는 교사가 하나같이 자격도 없어 보이고 양에 차지 않아 늘 불만을...

63. 이런 이야기- 자진납세 1부 file [12]

친구들이 자주 하는 인사 중에 “니는 잠은 안자나?“ 홈페지나 카페에 댓글을 넣은 시간을 보고 친구들이 하는 말이다. 대개 사람들이 저녁에만 댓글 다는 사람이 있고 새벽에만 나타나는 사람이 있고 아침 출근 후, 점심시간 등 거의 정해진 시간에 주로 흔적이 나타나는데 나 같은 경우는 시도 때도 없이 게시물마다 댓글이 올라오니까 잠도 안자고 컴퓨터에만 붙어 앉아 사느냐는 지청구를 하는데.. 에헤이~ 내가 왜 잠을 안 자? 남들 자는 만큼 다~ 잔다고요. 대략 잠에 대해 일각을 이뤘다고나 할까나, 캬캬~ 살짝 귀뜸하자면, 사흘 주야로 내리 잘 수도 있고 사흘 주야로 전혀 안 잘 수도 있음. 잠.... 잠에 대해서 말이지...ㅎ 취학 전 잠에 대한 사건은 기억에 없고, 초등학교 때도 개근상은 육년 동안 딱 한 번 밖에 못 받았지...

62. 사랑의 이름으로 file [4]

내게 사랑이란 이름으로 그려지는 얼굴. 언제 찍으신 사진인지 모르겠지만 우리집에 유일하게 남아있는 아버지 어머니 두 분 나란히 찍은 사진. 우리 아버지 머리카락 까만 시절도 있었네...

61. 엄마 file [6]

“열일곱 나이에 부모님 지어주신 인연 따라서 여덟 살 위인 아버지한테 시집을 왔는데 내 시집오니 이 집 식구가 열한명이더라. 대식구 먹는 일도 일이지만 길쌈해서 철철이 옷 지어 입는 일도 예삿일이 아니었네. 시누이 시집보내고 내 자식 하나 낳아 보태고 어른 한 분 돌아가시고 내 자식 하나 낳아 보태고 시동생 장가가고 내 자식 하나 낳아 보태고 나가고 채우고 나가고 채우고 도무지 줄지도 않는 열한 명 식구 수발 참 오래도 했네. 그럭저럭 너들 자라 객지 나가고, 니 아부지 아래채에 내려가 책 들고 앉으시면 이 집에 누가 있나, 나 혼자 아이가. 이렇게 살면 편할 줄 알았는데 그래, 그래, 참 편하긴 하지. 하지만 가끔은 사람이 그립기도 하니라.“ 어느 날 엄마가 그 말씀 하셨을 때 나는 왜 큭~ 웃었는지 몰라. 사진첩을...

60. 아버지의 '이야기'를 따라 [5]

아버지의 '이야기'같은 이야기를 따라 미륵부처 돌에 새긴 막내 이름과 막내를 위해 불사하신 엄마의 흔적을 찾아온 길 대절한 택시 기사가 내려놓고 간 함양읍 수동면 백전리 공배마을 [대암사] 위치를 묻느라 미리 전화를 드렸으니 차 소리에 사람 온 줄 아시고 스님이 내다보시곤 방으로 들라 하신다. 잠시만요, 일 좀 보고요. 스님께 인사 여쭙기보다 우선 돌에 새긴 막내 이름을 찾아내는 것이 나는 더 급했으니. 아버지께서 이름이 그렇고 미륵부처가 있으면 거기가 맞을끼다 하시더니 저기.... 미륵부처...맞제? 이 고운 분은 해수관음상이란다. 전에 엄마 병상에 계실 때 오빠가 꾼 꿈을 쫒아 찾아갔던 절에서도 해수관음상이 있었는데... 이 것도 무슨 인연일까? (인연은 고사하고 이 분이 도대체 뭐 하는 분인지나 알아야지...ㅎ) 헌...

59. [re] 렘의 증언^^ file

* 아버지의 이야기길에 동행해준 렘이 찍은 사진과 그녀의 일기 중 일부를 여기 붙여둡니다. (허락 안 받았는데.... 우얄랑공...) 모내기가 한창인 들길을 따라 물어 물어 찾아 온 수메루 아버님 이야기 속에 나오는 절, 대암사의 정문이다. 산길에 터를 잡고 일주문으로 시작하는 여느 절과는 달리 마치 시골 작은 학교의 교문과 같다는 생각이 친근감을 불러온다. 줄줄줄~ 바람과 꿈과 염원이 가득 담긴 간절함이 이름 석자로 표현될 수 있을까만은 각기 다른 사연을 간직한 이름들 틈을 헤집어 안승택이란 이름을 찾아봐야한다니 난감 또 난감~ 지난 여름 바닷가 모래밭에 떨군 반지를 찾으라는 것과 무에다르냐 싶지만 그래도 찾아야 하느니라. 안승택! 지리산 자락 전체에 깔아 놔도 모자랄 수메루 집안의 이야기들을 내 어찌 풀어낼 수 있을까 ...

58. 아버지가 들려주신 '이야기' file

“아버지! 내일은 제가 어딜 좀 가는데 이번에는 사나흘 걸리겠네요. 오는 길에 막내한테 다녀오게요.” 우유 챙겨 드시라, 속옷 갈아입으시라, 재차 다짐을 하는데 들으시는지 어쩌는지 아버지는 딴 말씀을 하신다. “막내 있는 데가 어디라?” “함양 마천이요, 아부지. 그런데 아부지 지금 그거 벌써 세 번째 물으신다.” “아니, 글케... 잠자리는 그래 그만그만 하더나?” “그럼요. 지한테 그보다 좋은 곳이 어디 또 있을라고요~” 막내 동생 지리산 자락 칠선계곡 두지터로 거처를 옮겨간 지 두어 달, 집 떠나 이렇게 오래 버티고 있는 것이 사실은 신기하고 기특하다. 이미 불혹이라는 나이, 마흔을 넘기는데 내게도 그렇지만 아버지께는 여전히 막내일 뿐이고, 자신도 마흔이란 나이를 세기나 하는지 모를 일이다. 떠날 채비 하느라 방안...

57. 여자도 아닌 것이 file [3]

- 여자도 아닌 것이 (1) 일요일이었는지 공휴일이었는지 늦잠을 자고 있었다고 기억되니 쉬는 날이었겠다. 벨 소리에 대충 옷을 걸치고 문을 열었더니 시골 친구 두 명이 냉큼 밀고 들어왔다. 소파에 앉으며 혹 자기들 집에서 전화 오지 않았느냐 물어 그런 거 없다 했더니 테이블 위의 전화기를 들었다. “니들 뭐야? 도대체 무슨 일인데?“ 내 물음에는 대꾸도 않고 어딘가로 전화를 걸어 ‘뭐라 뭐라‘하던 한 녀석이 자기들 여기 있다고 확인해주라며 내게로 수화기를 건네었다. 뭔데, 뭔데 하며 주는 대로 귀에 갖다 대니, “또 언니집이야? 애 아빠가 자꾸 귀찮게 해서 어떡해? 밤새 언니 잠도 못 자고 피곤하겠다. 빨리 쫒아 내버려! 언니 좀 쉬어야지.” 엉겁결에 받은 전화는 내게 학교 후배 되는 친구 녀석의 부인이었다. 영문도...

56. 생선을 사는 남자 file [16]

오래 전, 내가 이사한 집을 방문한 남자가 생선을 들고 온 일이 있었다. 남자한테 받는 생선 선물이라니, 도무지 상황 판단이 안 되어서 무슨 말을 해야할 지 엄두가 안 났다. “글쎄 그 남자가 갈치를 사들고 왔지 뭐야.” 슬며시 꺼낸 내 이야기를 전해 듣던 한 친구는 그 남자의 방문 소식을 놀라워하다가 갈치를 사왔더라는 말에 그만 폭소를 터뜨렸다. 한참을 방바닥에 기어 다니며 웃던 친구가 다시 정색을 하고 (좀은 딱하다는 표정으로) “자기네 집 근처에 꽃집 같은 건 없니?” “꽃집도 없지만 생선 가게는 더 없어 야.” 친구가 너무 웃어댄 바람에 민망해져서 다소 퉁명하게 대답을 했었다. 의외네, 의외네, 그 남자에게 그런 면도 있었던가 하면서 또 깔깔 웃고 무슨 마음으로 생선 들고 찾아갈 생각을 했을까, 왜 하필 생선을...

55. 하얀 잠꼬대 file

잠꼬대 야단스럽기로 소문난 우리 아버지, 당신 생신이라 모였다 연사흘 같이 지내던 아들 딸 각자 집으로 돌아간 오늘밤에 자주 그러시다 잊었던 일을 문득 기억해내기라도 한 것처럼 잠꼬대를 하시는데 예전처럼 고래고래 소릴 지르신다. 아버지 잠꼬대는 가족들의 아무리 깊은 잠도 흔들어 놓으시더니 연세 드셔서 꿈꾸는 힘도 부치시는지 요즘은 그래도 많이 덜 하시다. 나 어릴 적에는 아버지의 잠꼬대가 지금보다 훨씬 잦기도 했고 그 소리가 담장을 넘어 대문 밖 골목길 먼 데까지 나갔었다. 옆방에서 자다 놀라 마루로 뛰어나가 본 적이 어디 한 두 번이던가. 땀에 흠뻑 젖어 가쁜 숨을 몰아쉬는 아버지께 냉수를 드리면서 ‘너그 아부지 또 전쟁하셨다.’ 고 우리 엄마 안타까워하셨고 실전인 듯 처절하던 아버지 잠꼬대는 총을 쏘고 수...

54. 보내야 하는 자리 file [4]

우선생의 화장 안 한 맨 얼굴을 본 것은 그 날이 처음이었던 것 같다. 언제나 단정한 엷은 화장에 산뜻한 차림과 아이같은 맑은 웃음으로 마주하는 이의 마음까지 편하게 하던 우선생을 우연히 연락이 닿아 찻집에서 만나 요가수련원 문 닫으면서 끊어진 서로들 근간의 소식을 주고받는데, 동석한 조선생이 대신 전하는 우선생의 안부 속에 남편이 위암말기 판정을 받고 투병 중이라는 이야기가 조심스럽게 나왔다. 그 말에 놀라 우선생의 얼굴을 건너다보는데 흐르려는 눈물을 억지로 멈춰 세우느라 빨개진 눈을 하고도 습관인지, 얼굴에 미소를 놓치지 않으려 애쓰고 있었다. 이십대, 삼십대 젊은 사람들 속에 끼어 요가 지도자 과정을 수료하고 자격시험을 통과한 때의 우선생이 쉰 살이 바로 눈앞이라 했었는데 직업이 필요해서가 아니라 자기도 뭔...

53. 특별한 편지 한 장 file [2]

뭘 찾느라고 문갑 서랍을 열다가 문득 생각난 편지가 있어 펼쳐놓고 한참 흐뭇한 웃음을 짓는다. ‘언제나 웃는 얼굴로 인호를 대해주신 어머님께‘라고 시작한 이 편지는 내 아들의 친구 인호가 군대에서 보내왔던 편지다. 언제나 웃는 얼굴로 인호를 대해주신 어머님께 충성. 너무 늦은 감있이 인사드려 죄송합니다. 혹시나 인호가 얄미웠는지 모르겠습니다. 좀 더 일찍 올려야 하는 건데 말입니다. 날씨가 제법 추워져 어디 아픈 곳이라도 없는지 매우 궁금합니다. 일교차가 심하니 따뜻하게 입고 다니세요! 저 인호는 아주 건강히 잘 지내고 있습니다. 벌써 군인 입대한지 82일이나 됐습니다. 하루하루가 힘이 들고 그랬지만 어느덧 시간이 흘러 벌써 두 달 하고도 20일이나 지났습니다. 그러고 보면 시간이 정말 빨리 느껴집니다. 철부지 인호가 처...

52. 고향유정 file [6]

설을 앞두고 사돈 어른 부음을 받고 울산 갈 준비를 마치신 아버지께서 느닷없이 '석룡이 소 부리는 사진'을 하나 달라고 하셔서 뜬금없이 무슨 말씀인지 얼른 감을 못잡고 멀뚱거리고 있었더니 내가 찍어 놓은 사진 중에 석룡이 소 부리는 거 있더라고 하신다. "석룡이...? 아하, 금자 즈그 아부지요?" 한참 만에야 저장된 사진을 찾아내고 그게 왜 갑자기 필요하시냐고 여쭈니 가는 길에 가져다주면 그 사람이 좋아할 것 같다고 하신다. 지금 프린터 잉크가 떨어져서 집에서도 못 뽑고 미리 말씀하셨으면 사진관 가서 인화해 드릴 텐데 밤중에 갑자기 도리가 없어 다음에 해드리마고 사진을 드리지 못하는 사정을 설명했는데도 아버지는 서운하신 모양이었다. 2004년 봄날의 사진이다. 어머니 돌아가시고 시골집 정리하던 4월의 햇살 좋던 어느 날 ...

51. 두 손을 모으며 file [3]

오른팔을 앓았을 때는 제대로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 어설프게 왼손으로 밥숟가락을 들면서 차라리 왼손이었으면 덜 불편했을 것이라고 믿었다. 왼손으로 밥을 먹다 어른들께 야단맞으며 기어이 고쳤던 어릴 적 버릇을 상기하고 오른손잡이를 고집한 어른들을 조금은 원망하기까지 하면서 길들여진다는 것이 얼마나 무서운 일이냐고 생각했다. 글씨 하나 쓰지도 못하고 옷 갈아입기나 양치질이나 세수도 할 줄 모르는 그 때 느낀 왼손의 무능함이라니! 이번엔 왼팔을 앓았다. 가볍게 앓았을 때 고쳤더라면 덜 고생했을 일이었을 텐데 오른팔의 보조나 하는 왼팔이니 그다지 불편하지는 않으리라 대수롭잖게 생각하다 초기 치료를 놓쳤다. 하지만 왼팔의 보조가 없어지자 머리를 감거나 걸레를 빨거나 하는 사소한 일도 오른팔 하나로는 하지 못했다. 생각...

50. 어머니의 일기장 file [12]

사는 일 문득 암울해지면 더욱 사무친 그리운 이름 있어 기어이 눈물 쏟을 줄 뻔히 알면서 아들 녀석 집 비운 틈에 먼지 닦자는 서툰 핑계 얹어 내가 라고 이름 지은 어머니의 낡은 일기장을 꺼낸다. 그리고 내 어머니 아픔 깊은 삶의 구절 살뜰히도 새겨 놓으신 그 뜨거운 심정을 훔쳐 듣는다. 친당 부주 창녕 성공 대귀 지일야라 후천에 부주님전 올리옵나이다 불초 차 녀식 순흥 안실은 부주님 생전 시에 거룩하신 자애정을 엊지하면 갚사오리 부주님요 들으소서 엄중하신 우리 부주 백세 상수 하셨으면 일만 보존 하잤더니 칠십일세 일기로 혼련 하세 하셨으니 호천 통지 심소회를 엊지하여 푸오릿까 오호 창천이시여 인간에 흥망사를 회전하는 조물주가 만가를 운행함이 여하이 막연한지 엄중하신 우리 부주 천부성이 순후하시고 지상찬찬 온...

49. 여자의 일생 file [7]

여자의 일생 늦은 저녁상을 들고 있는데 핸드폰이 울렸다. ‘아름다운 나의 사랑아‘ 라고 노래하는 서유석의 목소리가 벨 소리를 대신하고 창에 j시인의 이름이 뜬다. ‘이 친구가 웬 일이라니...’ “소휘야! 여자의 일생을 처음에 어떻게 시작하지?” 추석이 되니 잊고 지내던 지인들의 목소리도 더러 듣는구나, 의례 안부 전화로 생각하고 받은 전화에 대뜸 여자의 일생을 어떻게 시작하느냐고 묻는 친구. “참을 수가 없도록! 이 사람아, 이 가슴이 아파도!!” “아하~ 그거구나. 여자이기 때문에 말 한 마디 못하고.” “그렇지! 그런데 느닷없이 웬 여자의 어떤 일생?” “그래.... 그 다음은 뭐지?” “헤아릴 수 없는 설움 혼자 지닌 채~” 전화기 건너 저 편에서 친구가 따라 부른다. “헤아릴 수 없는 설움 혼자 지닌 채...” “음치냐? 그...

48. 아주 특별한 기쁨 file [22]

"엄마! 성진이가 엄마 약 지어 온다는데?" "그 시키가 왜? 무슨 약?" "그러게.. 보약이라는데?" "뭐라? 보약? 지랄들 하고 있네." 한참 후 아들이 부른다. "엄마 ! 성진이 왔어!" "오이야, 나뿐 놈 왔냐?" 엉금엉금 기어서 마루로 내다보니 어릴 때도 그러더니 여전히 나에게 눈을 마주치지 못 하는 아들의 친구, 성진이란 놈이 고개를 외로 꼬고 인사를 한다. 오랫만이다, 잘 지내느냐, 요즘 뭘 하니, 장가는 언제 갈래 단숨에 여러가지 질문을 한꺼번에 뱉으니 녀석은 쑥스러운 듯 모로 돌린 얼굴에 웃음을 흘리며 "저 이번에 편입해서 학교 가요." 한다. "뭔 공부를 또 하게?" "한약 공부요.." 어딘지 전문대를 졸업하고 아버지가 하시는 약재상 일을 돕고 있다는 얘길 아들을 통해 듣긴 했었다. "잘 했다. 그래, 잘 했어." 마루에 뎅그러니 놓인 한...

47. 엄마랑 나랑 file [20]

“나한테 수메루 사진 있더라, 동생 결혼식 때 찍은 거. 엄마랑 찍은 것도 있고.“ 오랜만에 만난 자리에서 아참, 하고 꺼낸 레쎄님의 그 말이 얼마나 반가웠는지 숨이 멈추는 줄 알았다. 아무리 털고 뒤져봐도 내게 엄마 사진이 단 한 장도 없는 것이 서운해서 늘 가슴 한 구석 서늘했는데 내가 엄마랑 같이 찍힌 사진이 다 있었다니. 시디에 담은 사진 파일을 전해 받을 때까지 그리고 집에 돌아와 사진을 열어볼 때까지 얼마나 설레었는지 모른다. 있긴 한데 쓸만한 건 없더라고 미안해하는 레쎄님께 ‘그래도 무조건 하염없이 고맙다.’ 인사 하고 조명이 마땅찮은 예식장 복도에서 찍힌 어둡고 흐릿한 사진 한나절을 들여다보고 수정했다. 마흔 둘인가에 장가를 든 동생 결혼식 날 그렇게 소원을 했던 둘째 아들 장가가는 날 관광버스에 동...